KakaoTalk_Video_2024-06-19-14-31-42.mp4

“오늘 나 팝업 하는 데 한번 가보려고 “ 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먼저 성수동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브랜드에서 새로운 컬렉션이나 상품을 출시하게 되면 성수동에서 팝업을 진행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가 됐을 만큼 성수동은 문화 체험 공간의 성지가 되었다. 주중과 주말에 관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공간 체험을 위해 성수동으로 향하고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는 한국에 여행을 왔다고 하면 으레 들리는 곳이 성수동이다.

KakaoTalk_Photo_2024-06-19-14-04-29 003.jpeg

연무장 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팝업 전문 부동산들도 볼 수 있듯이 대체 불가한 지역으로 성장한 지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수동이 문화 체험 공간의 성지라는 특수성을 가지게 될 수 있던 것일까?

제조 산업의 성장과 쇠퇴

옛날 성수.jpg

원래 성수동은 대표적인 수제화, 인쇄 산업 밀집지역이었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 무질서하게 발전하고 팽창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선시가지기획령’을 발표했는데 한강 연안 부근의 성수동 역시 사업계획의 일환으로 포함되어 공업지역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KakaoTalk_Photo_2024-06-19-14-49-31.png

대형 제화업체인 금강과 에스콰이어가 성수동에 들어오게 되면서 협력 관계를 이루고 있던 소규모 업체들도 자연스레 성수동으로 이주를 해오게 되었다. 성수동에서 수제화 산업은 독자적인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게 되며 발전하게 되었고 2000년대 중반에는 구두 제작 업체의 44.4%, 구두 관련 제품 제조업체의 58.5%가 성동구에 집중되었다.

서울시의 산업 기능 분산 계획 아래 1970년대 준공업 지역을 거쳐 1980년대에는 자동차 정비, 의류, 인쇄 업체와 같은 도시형 소형 공장들이 부동산 시세가 저렴하면서도 도심과의 교통이 편리한 성수동으로 모이게 되며 소규모 산업 밀집 지역이 되었다.

외환위기와 쏟아지는 수입 신발 제품, 뚝섬 주변지역 난개발 방지를 위한 그린벨트 설정과 같은 복합적인 문제들이 얽혀 약 1000여개의 공장이 문을 닫고 성수의 부동산의 가치는 하락하게 된다. 제조 산업의 쇠퇴와 함께 사람 하나 없는 휑한 거리가 될 것만 같았던 공간은 젊은 예술가들의 기회의 땅으로 변하게 된다.

붉은 벽돌 마을과 대림창고

KakaoTalk_Photo_2024-06-19-14-05-45 025.jpeg

KakaoTalk_Photo_2024-06-19-14-05-44 023.jpeg

홍대를 중심으로 연남, 상수의 골목 상권이 발전 됐고 “광흥창, 대흥을 넘어 성수까지 발전될 것이다. 성수 땅을 사야 한다”는 입소문이 있었다. 한강만 건너게 되면 압구정과 청담이 있어 이전부터 ’앞으로 뜰 곳‘으로 평가를 받아왔던 성수였다. 2000년대 재개발이 대거 진행되며 서울 곳곳의 오래된 건물들은 사라져 갔지만 붉은 벽돌 공장들이 있는 성수동 일대는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되어 건물을 고치거나 새롭게 만드는 일은 없었다. 제조업의 쇠퇴기를 맞아 붉은 벽돌의 건물들만이 초라하게 남아 있던 성수동은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강남 등지에서 비싼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도망친 젊은 예술인들은 한강만 건너게 되면 강남,청담이 있고 월세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성수동 공장 일대 부지를 주목하게 되었고 성수는 그들의 정착지가 되었다.

공장기계가 비워진 건물 안은 젊은 예술가들의 백색 도화지가 되어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카페와 공방, 갤러리가 자리잡게 된다.

KakaoTalk_Photo_2024-06-19-14-35-36 003.jpeg